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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루(08.6.21)

가까운 곳 여행/문화유산

by ninesun 2008. 6. 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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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루(映湖樓)

우리 고장의 선비들은 世間의 名利와 榮達 을 뜬 구름으로 여기고 山水의 風光이 아름다운 곳에 樓亭을 지어 江湖의 갈매기와 벗하며 讀書와 逍遙로 悠悠自適한 삶을 추구하였다. 영호루는 이 고장 先人들의 情緖가 살아 숨쉬는 곳으로 密陽의 嶺南樓, 晉州의 矗石樓와 더불어 嶺南의 三大名樓의 하나이다. 이 樓閣은 예로부터 건너편 강언덕에 있었는데 홍건적의 난으로 이 고장에 머물었던 공민왕이 영호루에 올랐던 인연으로 친필 편액을 하사하여 1368년에 새로이 누각을 짓게 되었다. 그 후 네 차례의 水魔를 겪고 다시 지었다가 近世에 와서 1943년 다시 洪水로 유실되어 없던 것을 1970년 현위치로 옮겨서 다시 짓게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낙동상류 

 영좌명루

 

 

 

 

 공민왕의 친필

 비오는 날 영호루에서 바라본 안동시 전경

 

 

 

신승박 시비 "강"

항일의열투사 김지섭 선생

이 기념비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김지섭(金祉燮)1884~1928 선생의 투쟁과 뜻을 기리고자 1971년 4월, 이곳 낙동강 언덕(안동시 정하동)에 건립되었다.

선생은 안동시 풍산읍 오미마을에서 태어났다. 1907년 교원시험에 합격하여 상주보통학교 교사를 지내고, 재판소 번역관 시험에 합격하여 금산지방 법원 서기 겸 통역관으로 제직하였다.

선생은 3ㆍ1운동 직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곳으로 망명하였다. 고려공산당과 의열단은 선생이 활동하던 주요 단체였다. 1923년 일본 도쿄일대에서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수천명 동포들이 일본인의 공격으로 학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에 의열단이 일제를 응징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선생이 자원하고 나섰다.

1924년 1월 5일, 일본 왕궁 들어가는 이중교二重橋(니쥬바시)에 폭탄을 던진 거사의 주인공이 바로 선생이다. 이로 말미암아 구금된 선생은 지바 千葉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8년 2월 20일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충혼탑 

 시내쪽에서 찍은 영호루의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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