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09.3.28)
동학사 [東鶴寺]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724년(성덕왕 23) 상원조사(上願祖師)가 암자를 지은 곳에 회의화상(懷義和尙)이 절을 창건해 상원사(上願寺)라 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곳에 와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절을 지으니 승려들이 모여들어 사찰이 커지면서 이름을 동학사로 바꾸었다. 1394년(태조 3) 고려의 유신 길재(吉再)가 고려 태조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고, 1457년(세조 3)에는 김시습(金時習)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는데, 다음해 이곳에 들른 세조가 단종을 비롯해 세조찬위 때 억울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고 인신(印信)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728년(영조 4) 신천영(申天永)의 난으로 모두 소실된 것을 1814년(순조 14) 월인선사(月印禪師)가 예조에 상소하여 중건했고, 1864년(고종 1) 보선국사(普善國師)가 옛 건물을 모두 헐고 건물 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다. 1904년 초혼각을 숙모전(肅慕殿)이라고 개칭했다. 6·25전쟁 때 거의 파괴된 것을 1975년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무량수각·삼은각·숙모전·범종각·동학사·동학강원 등이 있는데 동학강원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수련도량으로 유명하다.
세진정은 팔각정이 아닌 육모정이다.정자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단정할 수 없으나 형태상의 특징으로 보아 그 연원을 고구려의 京이라는 小倉과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원두막 등에서 찾아볼수 있다. 이로 미루어 고대부터 이미 정자를 지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국 정자의 역사성은 고문헌이나 역사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현존하는 정자들은 대부분 14세기 이후에 건립된 것이다. 洗塵亭은 洗塵이란 이름은 마음속에 있는 번뇌의 티끌을 맑은 계곡에 온갖 더러움을 씻어 내듯이 깨끗한 마음으로 씻어내고 부처님께 향하는 뜻이 담겨 있다.
삼은각(三隱閣)
문화재 자료 제59호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이 건물은 고려 때 절의를 지킨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ㆍ목은 이색(牧隱 李穡)ㆍ야은 길재(冶隱 吉再)등 삼은(三隱)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원래 고려 유신(遺臣) 길재가 월영(月影)ㆍ운선(雲禪) 두 스님과 함께 단(壇)을 설치하고, 고려 태조 및 충정왕, 공민왕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다가 정몽주도 아울러 모셨다. 후에 1399년(조선 정종1년)에 고려 유신 유방택(柳方澤)이 삼은의 초혼제를 지냈고, 이듬해에 公州牧使 이정간(李貞幹)이 건물을 지어 삼은만 제사를 지내 삼은단이라 하였다. 세조 때에 초혼각을 세우고, 광해군 때 유방택을, 순조 때 이숭인(李崇仁, 陶隱)을 그리고 후에 나계종(羅繼從)을 추가하여 6인의 제사를 지냈으나 이름은 그대로 삼은각이라 한다.
신라가 멸망한 후 신라의 遺臣이자 高麗의 開國功臣인 柳車達이 高麗太祖 19년(丙申年 서기 936년)에 太祖의 願堂으로 된 동학사에 와서 遊觀하던 次에 山中에 모셔진 신라 始祖王 朴赫居世 및 朴堤上의 影幀을 보고 朴公의 忠烈을 思慕하여 東鷄祠를 創建하고 社公을 招魂하여 始祖王과 함께 제사지내 오다가 朝鮮 英宗 戊申(서기 1728)에 申天永이 衡火하여 全燒된 후 제사 지내던 것이 폐해졌다가 1956년(丙申) 9월에 중건되었다.
계룡산 초혼각지(鷄龍山 招魂閣址)
충청남도 기념물 제18호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789
세조가 단종을 물리칠 때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키며 죽은 사육신 이하 여러 충신열사들의 혼을 모셨던 곳이다. 1456년(세조2년)에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초혼제를 올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나라에서 단종ㆍ안평대군 등의 종실 인물과 김종서ㆍ황보인 등 당시 죽음을 당한 280여 위패를 모시도록 한 초혼각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728년(영조4년)에 화재로 불탄 것을 1864년(고종원년)에 만화(萬化)스님이 다시 세운 것이다. 1904년(고종41년) 숙모전(肅慕殿)이라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숙모전(肅慕殿)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7호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789
이곳은 세조에게 폐위당하여 죽은 단종과, 이에 항거한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金時習이 1456년(세조2년) 노량진 강변에 버려진 사육신의 시신을 장례 지낸 후 삼은각 옆에 단을 만들고 혼을 불러 제사하였는데, 2년 뒤 동학사에 들렸던 세조가 초혼각을 짓고 토지와 산림을 하사하였다.
1728년(영조 4년)에 불탄 것을 1827년(순조 27년)에 다시 세웠다. 그 후 1864년(고종 1년)에 초혼각 북벽에 단조의 위패를 모시고, 동벽에는 고려말 충신인 삼은(三隱)과 계유년 정변때의 삼상(三相 : 황보인, 김종서, 정분) 및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홍도의 7위를, 서벽에는 사육신과 김시습의 7위를 모셨다. 1883년 초혼각 욍 동ㆍ서무를 세워 군신을 나누어 모시게 되었으며 1904년(고종 41년)에 초혼각을 숙모전(肅慕殿)으로 개칭하고 단종비 정순왕후를 함께 모셨다.(단종「西」 정순왕후「東」)
이탑은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初層塔身은 1 石으로 되었으며, 門扉와 隅柱를 모각하였다. 初層屋蓋石과 2층 탑신은 1部材로 이루어 졌는데,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3단이며, 落水面은 완만하다. 初層塔身과2층탑신은 隅柱가 표현되었으며, 3층탑신은 亡失되었다. 相輪部는 露盤以上이 모두 亡失되었다. 이 탑의 현재 높이는 176cm로 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건립으로 추정된다. [충남 문화재 자료 제 58호]이루어 졌다
정면 3칸에는 모두 3분합문을 달아서 국화와 대나무,소나무,난초(사군자)의 문양을 조각하여 아름다운 형태로 지어진 건물이다
대웅전의 복련판 주초석
동학사 삼성각(東鶴寺 三聖閣)
문화재자료 제57호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578
七星ㆍ山神ㆍ獨聖의 三聖을 모신 곳이다. 가운데 칠성, 왼쪽에 산신, 오른쪽에 독성 탱화를 모셨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맡고 있으며, 독성은 인연의 이치를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존재이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산악 신앙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는데 재물을 담당한다. 각각 도교ㆍ불교ㆍ토속신앙의 한 표현으로,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앙 요소가 합쳐진 형태이다. 불교 이외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건물 이름을 殿이라 하지 않고 閣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