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09.4.12)
봉정사(鳳停寺)
천등산(天燈山) 남쪽 기슭에 자리한 이 사찰(寺刹)은 신라 문무왕(文武王) 12년(672)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이 이 곳에 내려 앉아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극락전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덕(能仁大德)이 창건한 후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중수하여 왔다고 한다. 본사(本寺)에 10동(棟), 동ㆍ서 2개의 암자(庵子)에 9동 등 총 건평 500여평이나 되는 안동에서 제일 큰 고찰(古刹)이다.
사찰 경내에는 1972년 해체 보수 때 발견된 상량문에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확인된 극락전(極樂殿, 국보 제15호), 조선시대에 건립된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55호), 화엄강당(華嚴講堂, 보물 제448호), 고금당(古今堂, 보물 제449호) 등의 건물들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건물과 조선시대의 목조건물들이 나란히 있어 우리나라 건축연구에 큰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외에도 극락전 앞에는 고려시대에 건립한 삼층석탑(三層石塔)이 있고 만세루,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영산암(靈山庵), 지조암(知照庵)이 있다.
봉정사 화엄강당(鳳停寺 華嚴講堂)
보물 제448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이 건물은 승려들이 공부하는 강당 건물로 온돌방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남쪽에 2칸 부엌, 북쪽에 4칸 온돌방이 있으나 원래는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현재의 온돌방 뒤쪽으로 4칸의 마루가 있었다. 강당으로 사용한 건물이므로, 불당(불당)에 비해 낮은 기둥을 사용하였다. 측면의 중앙에 사각기둥 1개를 세워 대들보를 받치도록 하였으며, 그 사이에 창을 내었다.
봉정사 대웅전(鳳停寺 大雄殿)
보물 제55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이 건물은 봉정사의 중심 건물로, 조선 초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이다. 건물 앞에는 축대를 높이 쌓고 그 윗면에는 좁은 마루를 깔고 난간을 세웠으며 내부도 마루를 깔았다. 중앙 뒷면에 높은 기둥 2개를 세워 그것에 의지해 불단(佛壇)을 만들었다. 기둥 사이의 창문이나 벽체 등 일부가 건립된 이후 변경되었으나 공포의 구성에서 힘 있고 단순한 수법은 초기의 다포(多包)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내부의 단청(丹靑)은 건립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 시대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건물과 함께 중요한 회화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퇴락하여 2000년에 해체ㆍ보수하였다.
봉정사 만세루(鳳停寺 萬歲樓)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5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이 건물은 대웅전 앞에 있는 2층의 누각형태를 한 건물로 사찰의 입구에 해당된다. 1680년(숙종6)에 건립되었다고 전하는 이 건물은 원래 덕휘루(德煇樓)로 불리웠으나 언제부터 만세루(萬歲樓)로 바뀐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건립 후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다고 한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지형의 경사를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앞면은 2층이나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하였다. 만세루는 17세기 후반의 건실하면서도 당당한 건축수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조선 중기 건축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봉정사 삼층석탑(鳳停寺 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봉정사의 극락전(極樂殿) 앞 뜰에 있는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는 3.18M이다. 탑의 무게로 인하여 기단부의 일부가 약간 파손되었으며, 상륜부(相輪部) 일부가 남아 있지 않으나 거의 완전한 3층 석탑이다.
2둥(二重) 기단의 방형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율이 적고,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이 탑은 봉정사의 극락전과 건립연대가 같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대의 다른 석탑과 비교하여 특이한 점이나 미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으나, 전체적으로 고려 중엽의 석탑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봉정사 고금당(鳳停寺 古今堂)
보물 제449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원래 선방이었으나, 지금은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1969년 해체 복원 당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1616년에 고쳐 지은 사실이 있으나 처음 건립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당초 남쪽에는 우화루(雨花樓)가 있어서 남쪽 지붕이 이 건물과 연결되고 그 아래쪽을 부엌으로 사용하였는데, 1969년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해체하면서 철거하였다.
봉정사 극락전(鳳停寺 極樂殿)
국보 제15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이 건물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柱心包)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12년(1363)이며, 그 뒤 조선 인조(仁祖) 3년(1625) 2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다. 원래는 대장전(大藏殿)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栱包)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의 고격(古格)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돌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배열했으며, 전면과 후면 중앙칸에 판문(板門)을 달았고 양쪽에는 살창을 달았는데, 전면의 판문과 살창은 수리할 때 복원된 것이다. 불당의 중앙 뒤쪽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불단(佛壇)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불단을 설치하였다.
안정사 석조여래좌상(安定寺 石造如來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이 불상은 안동군 월곡면 미질리에서 발굴된 것으로 그 곳에 있던 안정사에 보관되어 있었다. 본래는 연화좌대(蓮花座臺)에 안치된 석불상인데 안정사 주지가 방에 안치하면서 금분을 칠해 원형이 다소 손상되었다. 대좌(大座)와 광배(光背)는 없어졌다. 그 뒤 안동댐 건설로 안정사가 폐사되면서 1973년부터 봉정사에 보관하고 있다.
신체에 비해 작은 불두(佛頭)에는 나선형 머리카락(螺髮)과 큼직한 살상투가 표현되었다.당당하고 둥근 어깨에서 느껴지는 양감에 비해 가슴은 대체로 편평하며, 결가부좌를 튼 하반신을 높게 표현하여 안정감이 느껴진다. 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
이 불상의 양식은 통일신라 하대의 그것과 유사하므로 제작시기를 9세기 경으로 추정한다.
굴뚝
진여문
목어
법고
범종
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