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 여행/문화유산

단양적성비&적성(09.5.31)

ninesun 2009. 6. 15. 12:30

단양적성비&적성

  단양 신라 적성비(丹陽 新羅 赤城碑)

              국보 제198호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이 비는 높이 93cm, 윗너비 107cm, 아랫너비 53cm이며, 삼국시대에 신라가 죽령을 넘어 단양 일대의 고구려 영토를 차지하여 국경을 넓히고, 이 곳의 백성들을 선무(국민이나 점령지 주민에게 본국의 시책을 이해 시키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한 표적으로 세운 것으로, 1978년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 조사되었다.

당시 진흥왕이 명하여 신라 척경(국경 개척)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사람 야이치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이와 같이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국가정책의 포고 내용이 담겨있다.

이 비문에는 국왕의 명령을 받은 고관 10명의 이름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진흥왕 때 많은 공을 세운 인물로 이사부, 비차부, 무력 등이 주목된다.

이러한 인물들이 활동했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이 비의 건립연대는 신라 진흥왕 6~11년(545~550)경으로 추정된다.

단양신라적성비(국보 제198호)

비문은 크게 세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째 문단은 국왕이 대중등(大衆等)이란 직명을 가진 훼부(喙部) 출신의 이사부지(伊史夫智)를 비롯한 9인의 고관들에게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도록 교(敎)를 내린 부분이다. 교의 내용은 비문에 보이는 전체내용을 가리키는 듯한데 이 고관들은 고구려의 적성지방을 공략하는데 직접 참여한 군사지휘관들로 여기에는 김유신의 조부(祖父)로서 문헌상에도 확인되는 무력(武力)을 비롯한 인물이 보여 주목된다.

둘째 문단은 적성지방 출신의 야이차란 인물이 행한 어떤 공로를 기려 그의 처 등 가족들 및 그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인물들을 포상하는 내용이다. 포상의 대상은 몇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구체적인 포상의 내용이 각기 다르다. 이는 그들이 주인공인 야이차(也尒次)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수행할 역할에서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났기 때문 일 것이다.

셋째 문단에는 비문의 마무리 부분으로 결정된 사실을 현장에서 관련자들 에게 전달하고 실제로 집행한 사람과 비를 쓰고 세운 인명을 열거하였는데 왕경인과 지방민의 두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참고문헌/한국고대금석문 제2권)

 

 

 

 단영적성비에서 바라본 단양휴게소의 모습

 

단양 적성(丹陽 赤城)

       사적 제265호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이 성은 신라 진흥왕 545~551년경에 축조된 산성으로 둘레가 약 900m이었으나 대부분 붕괴되었고, 겹으로 쌓은 북동쪽의 안쪽 벽 등 일부만 남아 있다.

삼국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며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관계 변동을 알아보는 데에 큰 의미를 가진다.

성내에서 신라의 북진과 그에 따른 조처 등에 관한 중요한 기록이 담겨진 비석이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의 토기와 기와 조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축성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서 신라의 성 쌓는 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