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영당(09.5.31)
자양영당(紫陽影堂)
나라가 기울어져 가던 1889년 가을, 저명한 성리학자인 이항로(李恒老)의 제자인 유중교(柳重敎)가 이 곳 장담(長潭) 마을로 옮겨 오면서 제천에는 화서(華西:이항로) 학파가 크게 떨치게 되었다. 유중교는 중국 남송시대의 주희(朱熹)와 효종 때의 명신인 송시열(宋時烈), 그리고 그의 스승인 이항로의 영정을 모시고 정기적으로 참배하였다. 그들은 모두 나라와 민족이 외세로부터 굴욕을 당하였을 때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자 했던 이들이었다. 유중교는 자신도 그러한 길을 걷기를 원하였으며, 그 뜻은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스승의 뜻을 이어나가던 장담의 선비들은 1895년의 단발령에 직면하여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고뇌했다. 결국 그들은 개혁의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일제의 간섭을 “문경을 포기하고 야만으로 돌아가는 일”로 단정했다. 그리고 의병을 일으켜 친일 관료들을 처단하면서 한때 충주성까지 장악하여 이름을 떨쳤으며, 그 후 십여 년 동안 제천의병이 활동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만들었다.
자양영당(紫陽影堂)은 이소응(李昭應) 등의 제안에 의하여 이강년(李康秊)의 의병부대가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던 1907년 가을에 세워졌다. 그들은 유중교의 옛집 곁에 세워진 이 영당에 주희, 송시열, 이항로 외에 유중교의 영정까지 모시고, 그 뜻을 계승하기로 다짐 하였다. 유인석과 이소응을 배향한 것은 훗날의 일이다. 한편 이 곳에는 이항로 이래 그들의 역사의식을 담은 「송원화동사합편강목(宋元華東史合編綱目)」의 목판도 보관되었다.
이처럼 이 곳은 위대한 교육자인 유중교가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요, 유인석이 나라를 구하고자 의병봉기를 논의한 곳이며, 그들의 역사의식을 담은 목판이 전하는 곳이며, 그들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자양영당이 세워진 곳이다. 제천을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한 곳이다.
이에 제천시는 2001년 10월, 6년 간의 노력 끝에 이 곳을 가꾸어 제천시민들에게 바친다. 유중교와 유인석의 기울어진 옛집을 복원하고, 자양영당을 단장하여 그 모습을 새롭게 하였을 뿐아니라, 의병의 자취를 전하는 대형 전시관과 의병을 추모하는 곳인 숭의사(崇義祠)와 기념탑을 세우고, 목판을 보관하는 목판각을 다시 세워 그 뜻을 길이 간직하도록 하였다.
화동강목 판목(華東綱目 板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장양영당 안에 보관되어 있는 화동강목판목은 조선후기의 성리학자인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黙;1819~1888)과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1821~1893)가 중국 송ㆍ원대의 사적과 고려의 사적을 합기(合記)한 것으로, 삼강오륜에 대한 예의와 풍습을 백성들에게 계몽하기 위하여 편찬한 책의 판목이다.
화동강목의 간행작업은 의암(毅庵) 유인석(유인석;1841~1915)의 주도하에 조선 고종(高宗) 43년(1906)에 춘천 가정리 가정서사(柯亭書社)에 간역소를 차리고 판각 작업에 돌입하여 1907년 5월에 완료하였다.
이 판목은 가평 광악산과 평안도의 박다나무를 재질로 하였으며 글은 유제원(柳濟遠)의 글씨이다. 크기는 가로 33cm, 세로 21cm, 두께 1.33cm로 모두 3,300여매이던 것이 현재 1,513매만 남아 있다.
화동강목에 나타난 유교적 위정척사사상은 후일 의병운동과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으며, 한국 근대 정신사에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자양영당(紫陽影堂)
충청북도 기념물 제37호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이 곳은 조선후기의 유학자인 유중교(1821~1893)가 고종26년(1889)에 자양서사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고종 32년(1893)에는 의암 유인석(1842~1915)이 8도의 유림을 모아 창의의 비밀결사를 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고종 44년(1907)에 유림들에 의해 주자ㆍ송시열ㆍ이항로ㆍ유중교의 영정을 모시고, 자양영당을 세웠다. 후에 유인석ㆍ이직신의 영정을 추봉하고 춘추로 제향을 지내고 있다.
유중교는 호는 성재이며 본관은 고흥이다. 화서 이항로에게 배우고 21세에 화서의 지도로 「송원화동사합편강목(宋元華東史合編綱目)」을 김평묵과 편찬하였다. 이 판목(유형문화재 제37호)도 1,500여매 보관되고 있다.
제천의병기념탑
제천의병 창의지 자영영당에 건립한 제천의병기념탑은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구국의 일념으로 목숨을 바친 제천의병의 숭고한 의병정신을 기리고 오늘날의 시민정신으로 승화시켜 정신교육의 도장으로 삼고자 건립하였다.
기념탑은 제천의병이 한말 의병항쟁의 상징적 존재임을 뜻한다. 전체 구조는 주탑과 주변구조물 그리고 3개의 인물조각으로 구성하였다. 중앙의 주탑은 의병이념을 상징하고 좌우에는 그 당시의 민중운동을 생생하게 묘사한 조각으로 의병정신과 의병항쟁을 표현하였다.
주탑 주변의 5개의 석조물은 청풍명월 제천의 산과 계곡, 분지 등의 험준한 지형을 나타내어 의병 활동의 역경과 감격적인 장면을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
곧게 솟은 주탑의 수직 상승감은 진취적인 의를 위한 의병의 항거정신을 뜻사고 윗부분의 깨어진 흔적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불굴의 저항정신과 자유를 표상하였으며 아랫부분의 부조는 8도 의병과 제천의병의 활동 모습을 서사적으로 표현하여 항일투쟁의 기본정신을 나타내었다.
탑 우측의 2인 조각상은 의병의 주체인 유생과 농민을 형상화 하여 민족의식과 투쟁의욕을 나타내는 의병정신을 상징한다. 좌측의 3인상은 당시 굴복하지 않는 의병항쟁의 실제상황을 생생하게 형상화하여 역사성을 일깨우게 하였다.
유인석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