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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답사3(09.7.29)

ninesun 2009. 8. 7. 17:42

정동일대를 답사하다. 덕수궁은 시간관계상 입장하지 못하고 대한문 앞에서 위병 교대식을 구경하는 수 밖에 없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

 돌담길 가에 조가된 인물상들이 무엇때문인지 납짝 눌려있는 모습이 현대인의 고통을 말하는 듯?

정동교회

           사적 제256호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34-3번지

  이 건물은 고종(高宗) 32년(1895) 착공하여 광무(光武) 1년(1897) 10월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 예배당이다. 원래 정동교회는 고종(高宗) 22년(1885)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H.G.Appenzeller)가 설립한 감리교 교회이다. 처음에는 ‘벧엘 예배당’으로 명명한 한옥 예배당에서 예배를 보다가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서양식 벽돌조 예배당을 지었다. 이 건물은 여러 차례 고쳐 지었으나 본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일본인 요시자와(吉澤友太郞)가 설계하고 심의석이 시공하였다. 이 건물은 붉은 벽돌을 쌓고 나무 기둥을 세워 트러스 지붕틀을 얹은 단층 건물이다. 건물의 내부는 양쪽으로 늘어선 기둥에 의해 3개의 공간으로 구분된 삼랑식 평면이다. 십자형 경사지붕을 올렸으며, 남쪽 모서리에는 3층 높이의 평탑형식(平塔形式) 종탑을 세웠다. 내부는 단순한 평천장으로 만들었지만, 외관은 뾰족 아치, 원형창, 벽돌 내쌓기 장식, 세장한 창호와 창살(트레이서리, tracery)등 빅토리아시대의 전원풍 고딕양식으로 만들었다. 현재 교회에는 이 건물과 새로 지은 신관이 함께 있다.

 

 

 정동제일교회 최초의 한국인 담임목사였던 탁사 최병헌목사는 1858년 충북 제천에서 출생하였다. 1888년 아펜젤러 목사를 통해 기독교를 소개받은 후 1893년 세례를 받고 목회자의 길을 택하였다. 1902년부터 1913년까지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였고, 1914년에는 한국 최초의 감리사로 피택되었으며, 1922년 은퇴 후 감리교 신학교에서 비교 종교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아펜젤러 목사는 최초의 미국 감리교 한국 선교사로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내한하여 1902년 6월 11일 순교하기까지 정동제일교회의 초대목사로 시무하였다.

 이 글씨는 월인천강지곡에서 집자한 것임

중명전(重明殿)

중명전은 러시아의 건축가 사바찐(Seredin Sabatin)의 설계로 1897년부터 1901년에 걸쳐 황실도서관으로 건립된 지하1층, 지상2층의 벽돌조 건물로 처음에는 수옥헌(漱玉軒)이라 불렀다.

 1904년 4월 14일 경운궁 대화재 이 후 중명전은 고종황제의 편전이자 외국사절들의 알현실로 사용되었으며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된 근대사의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1907년 4월 20일 이곳에서 고종황제로부터 친서를 받은 이준은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고 대한제국의 주권회복을 호소하였으나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일제에 의해 고종황제는 강제 퇴위 당하였다.

  건축학적으로는 우리나라 근대건축의 가장 초창기 풍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1925년 3월 12일 일어난 화재로 외벽만 남기고 내부는 대부분 소실되어 원형을 잃었다. 해방이후 여러 차례 건물의 용도와 소유주가 변경되었으며, 2006년 9월 20일 문화재청으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2007년 2월 7일 사적 제124호인 덕수궁에 포함되어 사적으로 추가 지정되었다.

 한창 보수 중이다.

 

 

 구러시아 공사관의 남아있는 것도 한창 공사 중

 

 

 

 사진을 찍은 것임,

 

 대한문으로 돌아와서 기념사진 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