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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09.11.28)

ninesun 2009. 11. 30. 15:25

금정산을 산행하기 위해 범어사를 찾았다. 졸업동문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범어사 조계문(梵魚寺 曹溪門)

           보물 제1461호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이 문은 범어사의 정식 출입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불리운다.

  만법(萬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 있어 일명 삼해탈문(三解脫門)이라고도 한다. 일주문은 원래 사찰건물의 기본 배치에 있어서 사찰 경내에 들어갈 때 맨 먼저 지나야 하는 문이다.

  이 문의 첫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14년(광해군 6년) 묘전화상(妙全和尙)이 사찰 내의 여러 건물을 중수할 때 함께 건립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1718년(숙종 44년) 명흡대사(明洽大師)가 돌기둥으로 바꾸고, 1871년(정조 5년) 백암선사(白岩禪師)가 현재의 건물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건물의 기둥배치는 건물의 안정을 위해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지만, 이 조계문은 돌기둥이 일렬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일렬로 된 4개의 높은 초석 위에 배흘림을 가진 짧은 두리기둥을 세워 틀을 짠 뒤 다포(多包)의 포작(包作)과 겹처마 위에 무거운 중량의 지붕을 올려 놓음으로써 스스로의 무게를 지탱케 하는 역학적인 구조이다. 현재 건물은 정면 3칸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공포(栱包)는 다포양식으로 옛 목조건물의 공법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범어사 삼층석탑(梵魚寺 三層石塔)

               보물 제250호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이 탑은 이중 기단 위에 돌로 만든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3층석탑이다.

  탑의 층급 받침이나 기단에 새겨진 코끼리 눈 모양의 조각 등으로 보아 9세기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범어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835년(흥덕왕 10년)에 건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일제시대에 탑을 보수하면서 기단 제일 아랫부분에 하나의 돌이 첨가되어 이상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주위의 난간도 이때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래층 기단은 각 면에 3구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윗층 기단은 각 면석에 꽉 들어차게 안상 한 구씩을 조각한 수법이 특이하다. 탑 중간의 탑신부는 1층 탑신에 비해 2층부터 매우 작게 줄었으며, 옥개석은 평평하고 앏아 신라 하대 석탑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탑의 위쪽 상륜부(相輪部)는 노반이 거꾸로 놓여 있고, 후대에 보충한 보주만이 있을 뿐 다른 부분은 없어졌다.

  이 탑은 제일 아랫부분에 한 단의 석재를 첨가하고, 그 위에 탑의 몸체를 세웠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우뚝 솟아 보이며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유물의 복원이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이루어져야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신라의 석탑이 지방으로 전파되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섬세한 기법이 두드러지며, 기단이나 탑신의 면석에 조각이 장식되는 신라 하대 석탑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범어사 대웅전(梵魚寺 大雄殿)

                 보물 제434호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이 건물은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인 범어사의 중심 건물이다.

  이 곳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의 미륵보살과 오른쪽의 제화갈라보살의 삼존을 모시고 있다. 대웅은 부처님의 덕호이며,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봉안한 곳이다.

  범어사라는 이름은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이 왜구의 침입을 걱정하고 있을 때, 꿈에 신이 나타나서 의상대사를 불러 금정산에 가서 화엄신중을 외우고 기도하면 왜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자, 왕이 그렇게 하여 왜적을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대웅전은 678년(문무왕 18년) 창사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존하는 건물은 1614년(광해군6년)에 묘전화상이 건립한 것으로 1713년(숙종39년)에 흥보화상이 다시 건축한 것이다. 내부의 불단, 닫집, 삼존불상은 묘전화상이 다시 건축할 때 조성한 것이며, 불상에 다시 금칠을 입힌 것은 1824년(순조 24년)경 해민 대사가 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공포는 다포양식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건물은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기둥 위의 장식과 처마의 구조가 섬세하고 아름다워 조선 중기 목조건물의 좋은 표본이 된다. 정면의 아담한 빗살 창호와 닫집의 섬세한 조각장식은 우리 지방에 남아 있는 최고의 목조건조물로 평가되고 있다.  

범어사 석등(梵魚寺 石燈)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6호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이 석등은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가 678년(문무왕 18년)에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오나, 양식상의 특징으로 보아 범어사 3층석탑과 같은 9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금당이나 탑과 함께 사찰의 중심부에 놓인다. 이 석등은 원래 미륵전 앞에 있던 것인데, 일제시대에 종루가 심검당 앞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짐에 따라 옮긴 것이다. 형태는 하대석 위에 8각의 간주석(竿柱石)을 세우고, 그 위에 상대석을 놓아 석등을 밝힐 수 있는 창이 나 있는 화사석(火舍石)을 받치고, 그 위에 옥개석을 덮었다. 각 석재의 평면은 모두 8각이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이고 기본적인 양식에 속한다.

  이 석등은 하대석 윗면의 복련이나 상대석 아랫면의 앙련이 모두 복엽으로 8잎이 조각되어 있다. 화사석에는 4면에 장방형의 창을 내었다. 그러나 후대에 보완된 간주석이 빈약하고, 상대석이 두터워서 균형이 잘 맞지 않고, 하대석과의 비례가 맞지 않아 전체적 조화를 잃었다. 또 위쪽 상륜부의 부재들이 없어졌으며, 옥개석 위에 얹힌 노반은 제 짝이 아니다.

 

 

 

 

 

 

 

 

 범어사 팔상ㆍ독성ㆍ나한전(梵魚寺 八相ㆍ獨聖ㆍ羅漢殿)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63호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정면 7칸, 측면 1칸인 이 건물은 1902년에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당시까지는 중앙의 천태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팔상전과 나한전이란 별개의 건물이 서 있다가, 1905년 11월부터 약 1년에 걸친 공사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따라서 팔상전과 나한전의 건축 형식은 변형되거나 고쳐지지 않고 1906년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06년에 단장된 독성전 부분은 문틀을 하나의 퉁재를 사용하여 반원형으로 구부려 만든 독특한 모습이고, 삼각형 벽체 부분에는 넝쿨 형상을 초가하였으며, 창호도 화문살로 아름답게 꾸미는 등 장식수법이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 범어사 팔상ㆍ독성ㆍ나한전은 300여년전의 건축 형식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고, 특히 하나의 건물에 세 불전을 모신 점과 중앙에 위치한 독성전 출입구 부분의 뛰어난 의장과 초각 수법은 그 예가 극히 드물 정도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