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 여행/문화유산

원주변씨 간재종택 및 간재정(09.12.20)

ninesun 2009. 12. 21. 21:56

원주변씨 간재종택 및 간재정

   

정충효각(旌忠孝閣)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변중일(邊中一, 1575~1660)선생의 字는 가순(可純)이고 號는 간재(簡齋)이며 본관은 원주이다. 선생은 평소 효심이 뛰어났다. 어느날 모친이 병환이 위중하게 되자 꿩고기가 약이라는 의원의 말에 따라 눈 쌓인 온 산천을 헤메어도 얻지 못하였는데, 우연히 꿩이 집으로 날아 들어 이를 잡아 드리니 모친이 병이 나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효심이 지극함을 하늘이 안 것이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18세때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나 조모님과 모친이 병환중이어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시병(侍病)하였다. 어느날 조모를 해치려는 왜병을 몸으로 막으며 대신 죽기를 자청하자 왜병이 그의 효심에 감복하여 깃발과 칼을 신표(信表)로 주고 물러났다. 또한 그는 초야의 백성이지만 사직이 위태로운데 그냥 있을 수 없다며 백미 100석을 군량미로 희사하였다. 그 후 의병대장 곽재우와 의병에 참여하였고, 선조 30년(1597)에 왜병이 다시 침략하자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수호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

  난이 끝나고 사람들이 선생의 효행과 충절을 관에 알리려 했으나 선생이 극구 만류하였다. 나라에서 이 사실을 알고 참봉(參奉)에 제수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숙종 12년(1686)에 왕이 그의 충성과 효행을 기려 충효으 정려(旌閭)를 하사하고 정충효각(旌忠孝閣)을 세웠다. 

 

 

 원주변씨 간재종택 및 간재정(原州邊氏 簡齋宗宅 및 簡齋亭)

                     민속자료 제131호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간재(簡齋) 변중일(邊中一, 1575~1660)의 종택과 정자이다. 종택의 건립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 직후 변희예(邊希乂)ㆍ변희리(邊希李) 형제가 금계에 입향한 것으로 보아 그 이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종택과 정자는 19세기 전후한 시기의 건축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종가의 품위와 규모를 잘 갖추고 있다. 특히 산골짜기에 정침과 별당, 사당, 정자가 위로부터 자연지형에 순응하면서 각기 기능에 적합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사대부가의 공간영역을 구비한 드문 사례에 해당된다. 변중일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뛰어났으며,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의 휘하에서 종사하는 등 국난 극복에 힘을 쏟았다. 이로 인해 1686년(숙종12)에 나라에서 특별히 정충효각을 하사하였다. 한 사람이 충과 효를 겸비하여 정려를 받은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