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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종택(09.12.20)

ninesun 2009. 12. 21. 22:06

의성김씨 학봉종택(義城金氏 鶴峯宗宅)

              경상북도 기념물 제112호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이 집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이 살았던 곳이다. 학봉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로 성리학에 깊은 이해가 있었으며, 27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조선 선조(宣祖) 1년(1568)에 문과에 합격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학문은 영남학파의 학문적 전통계승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학봉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는데 지대가 낮아 물이 들어오자 영조(英祖) 38년(1762)에 이 곳에서 100m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그 후 1964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에 안채만 옮기고 사랑채는 남겨 두어 소계서당(邵溪書堂)으로 쓰도록 하였다. 안채는 오른쪽 3칸이 대청이고, 왼쪽 2칸이 안방이며 그 끝이 부엌이다. 이 건물은 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종택으로서의 품위를 간직하고 있다.

 

 

 

 

 

 

 

 

 

 

 

 

 

 

 

 

 

운장각(雲章閣)

  이 운장각은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선생의 유물관이다. ‘운장’이란 말은 ‘저 넓디 넓은 은하수(倬彼雲漢), 하늘에서 빛나고 있네(爲章于天)’라는 시경(詩經)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운장각에는 경연일기(經筵日記), 해사록(海傞錄) 등 선생의 친필 원고와 사기(史記),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같은 조선 초기 간행의 고서 56종 261점, 교지(敎旨) 유서(諭書)류의 고문서 17종 242점 등 보물로 지정된 것 외에도, 선생의 안경ㆍ벼루를 비롯한 유품과 후손들의 서적, 고문서들이 일괄 수장(收藏)되어 있다.

  선생은 문과 급제 출신으로 내ㆍ외 요직을 두루 거치고 명나라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 오는 등 내치외교(內治外交)에 전력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초유사(招諭使) 경상우도관찰사(慶尙右道觀察使)로서 관ㆍ의병을 총 지휘하여 임란삼대첩(壬亂三大捷)의 하나인 진주성대첩(晋州城大捷)을 거두었다.

  선생은 계사년(1593) 사월, 독전(督戰) 중에 과로로 진주공관(晋州公館)에서 순국(殉國)하셨다.

  선생의 청렴 강직한 성품과 조국애로 빛나는 삶은 조선왕조로부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고 문충(文忠)의 시호(諡號)를 받은 바 있다.

  선생은 퇴계(退溪)의 적전고제(嫡傳高弟)로서 시문(詩文)에 능하고 성리학(性理學)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유문(遺文)을 한데 묶은 학봉전집(鶴峯全集)이 세상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