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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운람사(2012.9.16)

ninesun 2012. 9. 16. 17:11

어제 밤부터 비가 계속 내리더니 아침에도 여전히 빗님이 농사꾼의 마음을 애태우는 일요일이다. 새벽에 버스터미널에 애를 태워다주고 깜박 잠이 들었다. 비가 하루종일 내린다는 예보를 들었기에 늦잠을 잤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점심은 나가서 먹기로 하고 느긋하게 tv를 보다가 시내에 있는 안동간고등어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이왕 나온김에 바람이나 쐬고 들어가자고 하는 아내의 성화에 빗길로 차를 몰고 의성 운람사를 가기로 하였다. 안평면에 있는 운람사는 산속깊은 골짜기에 숨어있었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산들이 키를 맞추듯 서로 봉긋봉긋 어울어져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비줄기를 느끼며 바라보는 먼 산은 구름이 피어오르면서 산등성이를 휘감고 돈다. 돌아오는 길에 옥련사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번 와보았지만 아내는 처음이라는 그곳도 한번 가보기로 하였다. 비내리는 조용한 산사의 모습은 고저녁한 운치 그 자체였다. 앞쪽에는 옥련지라는 못에서는 사람 두명이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빗줄기를 뚫고 앉아서....

운람사(雲嵐寺)

경북 의성군 안평면 운산리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로 천등산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다. 통일 신라 신문왕(682-692)때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사찰이 위치한 지형의 형국은 구름 가운데 반달이 솟은 형상(雲中半月形)이다. 산 아지랑이(嵐)가 구름(雲)으로 피어오른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운람사라 했다.

수많은 앞산의 연봉을 둘러싸고 새벽부터 연출되는 구름바다의 다채로운 변화가 장관이다.

경내에는 통일신라말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 있다.

현존 법당인 보광전에는 중앙에 아미타불,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2007년 주불인 아미타불의 복장에서 초조대장경 인쇄본이 발견되어 보물1646호로 지정되었고, 목조 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 27종 165점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28호로 지정되었다.

 

 

 

초조본 불설가섭부불반열반경(初雕本 佛說迦葉赴佛般涅槃經)

보물 제1646호, 1권1축, 11세기경

이 초조본 불설가섭부불반열반경은 11세기경에 판각한 초조대장경에서 인출한 것으로, 처음 발견된 것이다. 3장(張)에 불과한 짧은 단권경(單卷經)임에도 문자 간에 차이가 있어서, 초조장경과 재조장경의 비교연구 및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현재 국내에 전래되고 있는 초조본 가운데 복장(腹藏)에서 수습된 사례가 분명하게 확인된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인데, 조계종 불교문화재 일제 조사 과정에서 수습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된다. 현재는 불교 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초조본 불설가섭부불반열반경(初雕本 佛說迦葉赴佛般涅槃經)이란 부처님의 제자인 마하가섭보살이 열반에 든 부처님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경전.

 

 

의성 운람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 일괄 유물(義城 雲嵐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과 腹藏 一括 遺物)

이 불상은 양손의 엄지와 장지를 맞대어 설법인(說法印)을 맺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다. 재질은 목재 여럿을 잇대어 조성한 목조 불상이며, 양손은 별도로 만들어 손목에 붙였다. 본 아미타여래좌상의 양식적 특징은 하반신에 비하여 길고도 건장한 상반신, 하반신의 긴 안길이, 왼팔과 왼쪽 정강이로 흐르는 옷주름 등을 들 수 있다. 불상의 조성 시기는 조선전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복장(腹藏)에서는 불설가섭부불반열반경(佛說迦葉赴佛般涅槃經, 보물 제1646호)을 비롯한 다수의 복장물이 발견되어 불교조각은 물론, 서지학, 복식사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삼층석탑

 

호랑이와 함께 앉은 산왕의 모습

 

 

 

 

 

 

 

 

 

 

 

옥련사(玉蓮寺)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삼춘리 1011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신라 흥덕왕(재위:826∼836) 때 덕운(德雲)이 창건하였다. 절 아래에 있는 연못에 연꽃이 구슬같이 아름답게 핀다고 해서 옥련사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재위:1351∼1374) 때 편조(遍照)가 중창하였고, 1605년(조선 선조 38)에는 옥건(玉虔)이 중창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건물로는 극락전과 요사 3동이 있으며, 특별한 문화재는 전하지 않는다. 극락전은 고려 때 중건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600년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내부에 아미타불과 후불탱화·현왕탱화·신장탱화 등이 모셔져 있다. 이 중 아미타불은 목조로 높이 120cm, 너비 90cm이다. 절을 창건할 때 조성되었다고 한다.   

 

 

 

 

 

 

 

 

 

 

 

의성 옥련사 목조 아미타여래좌상(義城 玉蓮寺 木造 阿彌陀如來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5호

옥련사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132cm, 좌우 무릎 폭이 93cmfh 곡선미 있는 신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상호이다. 정수리에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육계 표현이 있고, 그 아래 타원형의 계주가 있다. 의습은 가슴 아래까지 올린 군의 위에 양 어깨에서 내려오는 통견의 가사는 가슴 아래로 길게 내려와 복부 아래에서 한번 접혀져 결가부좌한 양 무릎 사이로 부채꼴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수인은 아미타여래의 특징인 하품중생의 구품인을 하고 있어서 아미타여래의 도상학적인 특징을 볼 수 있다.

상호 및 신체표현과 의습 등 양식적인 면으로 미루어 볼 때 제작시기는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로 추정되며, 그 시기의 불교 조각연구에 역사적ㆍ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