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 여행/아름다운 산

고흥 팔영산(2015.4.25)

ninesun 2015. 4. 27. 20:18

안동오두막산악회 4월 정기산행으로 전남 고흥의 팔영산으로 산객들을 안내하였다. 아름다운 팔봉이 우리들을 반겨주면서 인생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화창한 남도의 화려한 자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하는 광경을 연출해 주었고,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은 바다위에 수를 놓듯이 점점이 펼쳐져 있었다.

 

 

 

 

고흥 능가사 추계당(秋溪堂) 및 사영당(泗影堂) 부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4호

부도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이다. 이 부도는 조선시대 후기 승려로 사제간인 추계당과 사영당의 부도이다. 능가사 외곽의 계곡 곁의 9기의 부도군 가운데 추계당 부도와 사영당 부도는 원 위치로 알려져 온다.

추계당 부도는 석종형(石鐘形)으로 기단부는 방형의 하대석 위로 8각의 복련을 새겼다. 16엽의 연화문으로 화려한 문양이 없이 오히려 소박한 편이다. 그 위에 원형의 홈을 파고 탑신부를 얹었다. 탑신부 하대에는 돌아가면서 물고기, 게 등이 조각되었다. 북쪽인 두 개의 유곽 사이에 방형의 위패모양을 새기고 그 안에 추계당이라는 당호를 새겼다.

사영당 부도는 석종형과 8각원당형의 양식에서 벗어난 이형 부도이다. 일반적인 부도와 달리 사영당 부도는 복련과 방형의 하대석이 한돌로 되면서 그 위에 바로 중석이 이어지고 양련이 생략되어있다. 하대석 귀퉁이에 각기 4방을 향하고 있는 용두를 조각하였고 그 위로는 한 돌로 연결된 복련이 이어지고 있는데. 각 면이 2엽씩 모두 8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었다. 북쪽에는 직사각형의 위패모양을 새기고 그 안에 사영당이라는 당호를 새겼다. 이들 부도의 조성연대는 추계당 부도는 17세기 중반 경, 사영당 부도는 17세기 후반 경으로 보인다.

 

 

흔들바위

이곬 흔들바위는 마당처럼 꼼짝하지 않는다고 하여 마당바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힘센 어른이 밀고 당기고 시름하다 보면 큰 바위가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기에 흔들바위라고 불리고 있다.

* 제 1 봉 - 유영봉(儒影峯) 491m

- 유달은 아니지만 공맥의 도 선빌레라 유건은 썼지만 선비풍체 당당하여 선비의 그림자 닮아 유영봉 되었노라.

 

 

 

 

 

 

 

 

 

 

 

 

 

 

 

* 제 2 봉 - 성주봉(聖主峯) 531m

- 성스런 명산주인 산을 지킨 군주봉아 팔영봉 지켜주는 부처같은 성인바위 팔영산 주인되신 성주봉이 여기로세.

 

 

 

 

 

* 제 3 봉 - 생황봉(笙簧峯) 564m

- 열아홉 대나무통 관악기 모양새로 소리는 없지만 바위모양 생황이라 바람결 들어보세 아름다운 생황소리.

 

 

* 제 4 봉 - 사자봉(獅子峯) 578m

- 동물의 왕자처럼 사자바위 군림하여 으르렁 소리치면 백수들이 엎드리듯 기묘한 절경속에 사자모양 갖추었구려.

 

 

* 제 5 봉 - 오로봉(五老峯) 579

- 다섯명 늙은 신선 별유천지 비인간이 도원이 어디메뇨 무릉이 여기로세 5신선 놀이터가 오로봉 아니더냐.

 

 

 

 

 

 

 

 

* 제 6 봉 - 두류봉(逗留峯) 596m

- 건곤이 맞닿는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 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 제 7 봉 - 칠성봉(七星峯) 598m

- 북극성 축을 삼아 하루도 열두 때를 북두성 지루돌아 천만년을 한결같이 일곱개 별자리 돌고 도는 칠성바위.

 

 

 

 

 

 

 

 

 

* 제 8 봉 - 적취봉(積翠峯) 591m

-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첩첩하며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쌓여 꽃나무 가지엮어 산봉우리 푸르구나.

 

 

 

 

 

 

 

 

 

 

 

 

 

 

 

 

능가사 사적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

사적비란 절의 내력을 적어놓은 비를 말한다. 사적비에 따르면 신라 눌지왕 원년인 417년에 아도화상이 보현사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처음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이 후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린 것을 인조22년(1644) 정현대사(호 벽천)가 여름에 수행하다가 꿈에 산의 남쪽에 옛 절터를 발견하여 전각, 요사채, 불상, 탱화, 종각, 목어갉 등 불사를 하면서 능가사로 다시 일으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적비는 방형에 가까운 자연석 좌대 위에 귀부를 올리고 그 위로 비신과 이수(비석의 지붕)를 갖춘 완전한 형태의 비이다. 비문에 따르면 능가사는 원래 보현사란 이름으로 처음 지어졌으나, 지리지 등에는 별개의 사찰로 각각 기록되고 있다.

 

 

 

능가사 대웅전

보물 제1307호

대웅전은 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능가사는 팔영산 아래에 있는 평지사찰로 일명 보현사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던 것을 조선 인조 22년(1644)에 벽천대사가 다시 지어 능가사라 했다.

이 건물이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기둥은 약간 거칠게 다듬은 배흘림 형태이다. 특이한 것은 건물 방향이 입구에 맞춰 북향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의 건물이지만 규모가 크고, 건축양식이 우수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지금의 모습은 최근에 해체 보수한 것이다.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4호

사천왕상은 원래 인도 재래의 방위신인데 불교에 흡수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천왕상일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는 대략 6세기말이나 7세기초로 보고 있다. 감은사지 사적기에 사천왕상이 조각된 것을 보면 7세기말에 사천왕상이 많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8세기가 되면 사천왕상은 인왕상과 함께 만들어지다가 9세기 이후부터는 주로 석탑이나 부도의 기단부에 활발하게 조각된다.

1995년 천왕문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초창 연대는 조선 현종7년(1666)이며, 중창은 조선 순조 24년(1824), 3창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으로 세 번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 수있다. 또 이를 뒷받침해주는 자료로 조선 숙종16년(1690)에 세운 “능가사 사적비”에 천왕문과 사천왕상에 대한 시주자 명단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천왕문의 상량문에서 밝혀주고 있듯이 초창 연대가 1666년이므로 천왕상 역시 이때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