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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2(08.10.5)

가까운 곳 여행/멋진 계곡과 푸른 강

by ninesun 2008. 10. 1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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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

 

 

 

 

 

 

 

  금사담(金砂潭)과 암서재(岩棲齎)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溪谷) 속이 못이라는 의미로 금사담(金砂潭)이라 불리우며 화양구곡(華陽九曲) 중에서 중심이 되는 곳이다.

조선(朝鮮) 숙종(肅宗 166~1720)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정계(政界)를 은퇴한 후 이곳 반석 위에 집을 지어 이름을 암서재(岩棲齎)라 하고 이곳에서 은거(隱居)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하였다. 이 건물은 그 간 여러 차례 중수(重修)를 거쳤고, 현재의 건물은 1986년에 중수되었다.

 

  

  화양서원 묘정비(華陽書院 廟庭碑)

충청북도 기념물 제107호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이 비석은 화양서원의 건립 취지와 향사하고 있는 송시열선생을 추앙하는 뜻을 기록한 것을로 숙종 42년(1716)에 세워졌다. 비문은 윤봉구가 지었고, 안진경의 글자를 모아 만든 비이다. 그러나 고종 7년에 서원이 헐리면서 이 비석도 땅 속에 묻히게 되었다. 광복 이후에 묘정비를 다시 세우고, 1980년에는 그 옆에 한글로 된 해설비를 세웠다. 화양서원은 숙종 22년(1696)에 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세워지고, 사액되었으며 숙종 42년(1716)에 어필 편액을 달았다. 그러나 이곳의 유생들이 오만하여, 소위 화양묵패(華陽墨牌)의 폐단으로 철종 7년(1858)에 철폐당하고, 고종 7년에는 헐리어 없어졌다.

  

읍궁암(泣弓岩)

이 바위는 화양구곡(華陽九曲) 중 제3곡으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조선시대 효종대왕(孝宗大王, 1619~1669)께서 북벌(北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昇遐)하신 것을 크게 슬퍼하며 새벽마다 한양을 향하여 활(弓)처럼 엎드려 통곡하였다”하여 읍궁암이라 부른다.

 

 

 

 

 

  

 만동묘정비(萬東廟庭碑)

충청북도 기념물 제25호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이 비는 만동묘를 세우게 된 취지와 제사를 모시고 있는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을 추모하는 뜻을 기록한 것이다. 영조 23년(1747)에 이재가 글을 지어 세웠으며, 순조14년(1814)에 다시 세웠다.

만동묘는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권상하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기 위해 숙종 29년(1703)에 세운 사당이다. 초기에는 나라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이 곳 유생들의 횡포가 심하자 고종2년(1865)에 나라에서 대보단에 모시고 만동묘를 철폐시켰다.

그 후 유생들의 끈질긴 건의를 받아들여 다시 향사케 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1917년에 제사를 금하게 되었다. 1937년에는 위패와 제사 용구를 불사르고, 묘정비는 비문을 알아보기 힘들게 쪼아버리더니, 1942년에는 묘당(廟堂)등 일체의 건물을 철거하여 괴산 경찰서 등을 짓는데 사용하였고, 묘정비는 땅에 묻어버렸다. 1983년에 괴산군에서 묘정비를 찾아 다시 세우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운영담(雲影潭)

화양 제2곡

경천벽에서 약 1.2km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沼)를 이루고 있다.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운영담(雲影潭)이라 이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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