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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의 바다(2012.8.7)

가까운 곳 여행/가족여행

by ninesun 2012. 8. 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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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일 계속되는 폭염경보가 사람들을 지치게 하나 보다. 서로가 짜증스런 모습으로 올여름을 보내면서 마음의 고통이 많아지는 것 같다. 괜히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대듯이 싫증을 내면서 투정을 부리는 집사람을 보면서 이렇게 가만히 있기는 무엇하다 생각이 들어서 늦은 아침에 길을 달렸다. 불영계곡을 지나서 울진의 앞바다가 마음에 와 닿았다. 푸르런 바다가 넘실되는 파도를 보고 싶었다. 찌는 듯한 태양의 공격을 피해서 그늘막을 찾아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냥 내몸을 맡기는 것도 좋으련만...

맹위를 떨치는 무더위 탓이런지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더위와  한판을 하는 피서객들이 위대해 보였다.

사랑바위 전설

옛날도 아주 오랜 옛날, 부모님들이 호환을 당하여 천애고아가 된 오누이가 서로 의지하며 약초캐는 일로 연명하는데, 어느날 꿈속에 신령님이 나타나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께서 병이 나시어 이곳 불영사계곡에서 자생하는 「삼지구엽초」를 구하고자 하나 산양들이 뜯어먹어 사람손이 닿지 않은 아주 높은 절벽 위에만 있으니 구해 온다면 큰 상을 내리겠노라!”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사흘동안 정성껏 기도를 하고, 계곡의 높은 절벽을 오르기를 이레만에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벼랑에 늘어진 「삼지구엽초」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팔은 뻗다가 오빠가 실수로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누이는 사흘 밤낮을 슬피 울며 통곡하다가, 마침내 뒤따라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말았다. 그 후 계곡에서 울리는 누이동생의 애절한 통곡소리가 하늘에 닿아 신령님이 두 남녀를 바위로 변하게 하여 평생 떨어지지 않게 포옹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통곡소리가 들리던 산은 “통고산(통곡산)”으로, 사랑하는 오누이가 떨어져 죽을 때 흘린 피가 묻은 소나무는 껍질과 속까지 붉은 “울진소나무(적송, 금강송)”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사랑이 이루어지고, 이별이 없다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삼지구엽초」를 다려 먹으면 귀한 자식을 얻고 부부간에 금슬이 좋아진다고 한다.(본 전설은 구전을 토대로 지역출신 사교진씨와 교육자 남만희씨의 각색을 토대로 한 것임) 

 

 

 

 

 

 

망양정(望洋亭)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2

이 정자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넓은 동해를 바라보며 산 정상에 날을 듯 앉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원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11년(1860)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후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58년에 중건하였으나,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에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특히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하여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란 현판을 하사하였으며, 망양정의 절경을 읊은 유명한 시와 글로는 숙종(肅宗)과 정조(正祖)의 어제시(御製詩), 정철(鄭澈)의 관동별곡 등이 전해오며, 그림으로는 정선(鄭善)의 백납병ㆍ관동명승첩에 있는 망양정도(望洋亭圖)가 유명하다. 

 

 

 

 

 

 

 

 

 

 

 

 

 

 

 

 

 

 

 

 

 

 

 

 

 

 

 

 

 

 

 

월송정(越松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관동팔경의 제일경인 월송정은 고려시대 이래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유람지로서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정자이다. 중도에 퇴락한 것을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에 강원도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지만 다시 황폐해져서 1933년에 이고을 사람 황만영(黃萬永)ㆍ전자문(全子文) 등이 재차 중건하였고, 일제 말기에 이곳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어 터만 남아 있었다. 그 후 1969년에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의 후원으로 2층 콘크리트 건물이 세워졌으나 원래의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하고, 1980년에 현재와 같이 다시 세웠다.

이 정자는 사선(四仙)이라고 불린 신라시대 영랑(永郞)ㆍ술랑(述郞)ㆍ남석(南石)ㆍ안상(安詳) 등 네화랑이 유람했다는 설화가 남아있는 유서깊은 곳으로 만그루의 소나무가 십리가 넘는 흰모래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었다고 한다. 월송(越松)이라는 이름은 사선이 달밤에 송림에서 놀았던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월국(越國)에서 솔씨를 가져다 심었기 때문이라는 향전(鄕傳)도 있다. 

 

 

 

 

 

 

 

 

 

평해황씨 시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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